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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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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10)

 

19. 수리의 지각(知覺)

 

 

 

젊은 수리가 병이 들어 죽게 된지라. 그의 어미더러 청하기를, “어머니 이제는 할 수 없으니 명산대천(名山大川)과 절간에 가서 기도나 좀 하시면 내 병이 낫지 않을런지요.”

어미 수리가 대답하되, “어느 명산대천과 절간이라고 네나 내나 도적질 아니한 데가 있으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우리 기도를 누가 들어주겠니?”하더라.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학대하여 나라를 망하게 해놓고, 불공과 산천기도로 나라 잘 되기를 비는 사람들은 이 수리 지각(知覺)만도 못하도다.

 

          

 

엮은이의 글 

 

전쟁에 대한 대비가 평화를 보장하는 최선의 보증인 것처럼, 도덕적인 양심의 무장만이 죽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돌아보는 회개의 삶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윤치호 일기

“일본군이 만주에서 러시아군과 싸워서 승리하는 동안 조선의 황제는 관직을 팔아 넘기고, 장난감 같은 대궐을 짓고, 일본을 저주하며 러시아가 승리하도록 산신령과 강신령들에게 고사 지내는 데에 국고를 낭비하느라 바쁘다.” -1905년3월21일  

“파렴치한 황실의 횡포와 교활한 일본의 배신 사이에서 조선백성은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1904년12월25일 

“명성왕후는 자신의 왕조를 지키기 위해서 북관왕묘를 짓는 데 수십만 원(대부분 부정하게 축재한)을 썼을 것이다. 북관왕은 황후의 왕조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명성황후 자신을 지키지도 못했다. 

만약 그 똑똑하고 이기적이었던 명성황후가 남의 나라 귀신을 헌신적으로 섬기던 것의 반이라도 자신의 백성들을 위했더라면, 황후의 왕조는 지금까지 무사히 남아 있을 것이다.”- 1920.2.11 

 

“도둑떼들에게는 지금이 좋은 세월이다. 황제, 대신, 관찰사, 수령, 조선인과 일본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보다 약한 이웃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아귀다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1905년7월4일

 

 

20. 사자의 청혼

 

산 속에 사는 사람이 일색 딸을 두었는데, 사자가 와서 청혼하거늘 감히 막지 못하고 대답하되 “대왕님 같은 사위를 두었으면 오죽이나 좋겠소만 내 딸이 어리고 약하여 겁이 많으니, 대왕의 이와 발톱을 다 빼면 혼인하겠소.” 하니, 사자가 그 색시를 탐내여 이와 발톱을 다 빼고 왔거늘, 신부 아비가 몽둥이로 때려 잡더라. 

 

 

 

 

엮은이의 글 

사랑에 눈이 멀면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 분수 없고 판단력이 실종된 민족에게 보내는 경종이다.

 

 윤치호 일기 

“우리 일본인 친구들은, 조선인이 일본인화 해야 한다고, 그것도 조선인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지난 500년 동안 영국이 아일랜드인을 앵글로 색슨인화 하는 데 성공했는가? 지난 300년 동안 보헤미아 전역을 점령했던 오스트리아가 체코슬로바키아 인을 오스트리아인화 하는 데 성공했는가? 폴란드인은 러시아와 프로이센이라는 짐승 같은 열강에게 100년 이상 병합되어 있었지만, 그 뒤 러시아와 프로이센에게 가장 힘겨운 적이 되지 않았는가? 

 

조선인은 정의. 친절한 배려. 신뢰. 공정한 대우를 받을 때, 일본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바로 그것이 최선의 동화 방책일 터이므로.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동화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불의, 억압, 야비함은 조선을 일본의 아일랜드로 만들 것이다.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1920년 7월 19일.  

 

“영국이 아일랜드에서 악정을 펴는 동안 아일랜드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反英感情). 일본은 영국이 아일랜드에서 얻은 교훈을 거울 삼아, 조선인이 아일랜드 사람처럼 되지 않도록 현명해 졌으면 좋겠다.”-1920년2월26일.

 

21. 나무꾼과 부처님

 

 

나무꾼들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다가 한 아이가 도끼를 잃고 찾지 못하매, 그 근처 절에 가서 부처님께 빌고 찾아달라자 하여 여러 아이들이 그 절을 향하여 가다가 중도에 그 절의 중 몇이 내려오거늘, 나무꾼이 어디 가느냐 물으니, 중의 대답이, “어제 밤에 절에 도적이 들어 불기(佛器; 부처에게 공양할 때 쓰는 그릇)를 잃어버렸기에, 원님께 가서 찾아달라고 사정하러 간다.” 하는지라. 

도끼를 잃은 나무꾼이 말하기를, “절에서 잃어버린 그릇도 찾지 못하는 부처가 남의 도끼인들 찾아줄 수 있겠나?” 하고, 헤어져 가버리더라.

 

  

엮은이의 글 

나무꾼이 자신의 도끼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주권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으려는 방법 또한 안일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주권을 잃고 남의 탓이나 한다고 해서 강탈당한 것을 내 손에 쥐어줄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 세상에 믿을 것은 자주적인 능력과 믿음 외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윤치호 일기

“일전에 예종석씨가 나에게 아세아협회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일본 군부와 줄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이 협회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아시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인들이 이 조직을 결성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자기 나라도 스스로 경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아시아인들에 의한 아시아를 경영하자고 주장하는가.’하고.” -윤치호 일기1933년7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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