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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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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 (Malena)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X)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
 

 

   시칠리아 전통에 따라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은 짧은 바지를 입고 다녀야 하며 이발소에서도 거울 앞 큰 의자에서 이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멀쩡한 아버지 바지를 줄여 입으려고 수선집에 거짓으로 맡겼다가 들통나 부모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는 레나토도 이제 성년이 되었다.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니노에게 익명의 편지를 써서 보내는 레나토.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당신은 전장에서 죽은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말레나를 잘 아는 남자로서 내가 확신하건대, 말레나가 사랑한 남자는 오직 당신뿐이다. 그녀에 대한 모든 소문은 다 헛소문이고 거짓말이다. 내가 말레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메시나로 향하는 열차에서였다…." 
   '사랑의 메신저' 레나토의 바로 이 편지 내용이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니노가 말레나를 찾으러 메시나로 떠난지 1년 후, 니노가 아름다운 아내 말레나와 팔장을 끼고 보란 듯이 마을광장에 나타난다. 또 다시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거리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으로 정적에 휩싸인다. 

 

 

   이 군중 속에 말레나를 닮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난 레나토. 이때 마을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말레나의 용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스코르디아 부인"이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표시한다. 
   말레나는 집단에 동화되지 않는 치명적 아름다움 때문에 누구의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고, 절대주의적 관습과 파시즘에 의한 파괴적 집단의식이 지배하는 폐쇄된 사회에서 주민들의 질투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 희생 당해야 했다. 그로 인해 한 여성으로서의 인격과 사생활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 남자의 소유로 귀속됨에 따라 이러한 갈등은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변가 시장에 장을 보러 온 말레나. 예전과는 달리 수수한 옷차림에 이제 눈가에 주름도 잡히고 몸집도 좀 불은 듯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수줍음을 잘 타는 말레나는 그 치욕의 경험 후 자기에 대한 관심에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긴장의 순간! 

 

 

   그러나 시장의 여자들은 그녀에게 서로 앞다퉈 먼저 인사를 건네고 돈을 받지 않고 그녀에게 물건을 건넨다. 아무튼 말레나에게 가해지던 폭력이 절대적이었던만큼 돌변한 사람들의 태도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남자들에게는 뒤틀린 욕망의 표출구가 되었고, 또 여자들에게는 자기 남편을 지키고자 하는 보호본능에 위협이 되었던 그 뇌쇄적인 아름다움이 이제 더 이상 마을여자들에게 '화제'가 아닌 인격체로서의 '존재'가 된 것이다.
   해변가에서의 마지막 장면.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말레나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멀찌감치서 오랫동안 지켜보는 레나토. 그때 그녀의 무거운 시장바구니에서 오렌지가 쏟아지자 이를 본 레나토가 잽싸게 자전거를 몰고 가서 주워담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말레나와 직접 대면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행운을 빌어요. 말레나 부인!" 
   곧 헤어져 자전거를 타고가면서 영원한 이별을 아쉬워 하듯 말레나가 사라질 때까지 자꾸 뒤를 돌아보는 레나토…. 

 

 

   영화는 중년이 된 레나토가 어릴 때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말레나를 회상하는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세월은 흘러 나는 여러 여인을 사랑했다. 그들은 내 품에 안겨 자신을 기억할 것인가 물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엔 내게 결코 물어본 일이 없던 말레나만이 남아 있다.” 
   모든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자, 모든 여자들의 질투의 대상이었던 말레나. '말레나'는 아련하고 풋풋한 첫사랑 영화가 아닌, 집단의 파시즘과 폭력에 대한 처절한 영화였다. '말레나'는 거의 대사도 없이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에 의해 현실감 있는 인물로 태어났다. 
   초콜릿 빛깔의 아름다운 눈빛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몸매와 모델 워킹만으로도 어떤 영화의 어떤 여주인공보다 눈부신 모습인 그녀는 이 영화에서 농익은 누드 장면뿐만 아니라 마을 광장에서 벌거벗겨진 채 집단 린치를 당하는 힘든 연기를 소화해냈다.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비너스의 화신' 모니카 벨루치의 영화"다.

 

 

   또한 쥬세페 감독은 말레나를 늘 지켜보는 십대 소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함으로써 극의 흐름에 따라 인간에 내재된 광폭함과 위선, 우매한 군중 심리에 대하여 보다 철저하고 설득력있게 고발하고, 동시에 인간의 추악함과 순수함, 개인의 심리와 본능까지 분석하는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서와도 닮은 서민들의 삶까지도….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1956년생) 감독은 앞에서 언급한 '시네마 천국'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고, 그 후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 1998)'에 이어 'The Unknown Woman(La Sconosciuta•2006)'으로 2007년 29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실버 조지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는 '시네마 천국'으로 토르나토레 감독과 인연을 맺은 후 그가 만든 모든 작품의 음악을 도맡았다. 그는 우리에게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이른바 "무법자 3부작"인 스파게티 웨스턴과 특히 '미션(The Mission•1986)'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새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짐)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거장 작곡가로 2020년 7월6일 향년 91세로 작고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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