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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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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양주동 박사

 

 

Editor’s Note

 

-적당한 음주는 인생의 풍미

-원만한 대인관계에도 활력소

 

 

 “잠 안 오는 밤, 일어나 일수(一穗: 이삭 모양)의 청등(靑燈)을 돋우어 놓고 지난 시절을 차례로 회억(回憶)하면서 특히 문학소년 시절과 문단, 학창, 교단생활을 더듬어 몇 토막을 점철하여 본다.” (양주동 ‘문주반생기’)

 나처럼 1970년대 언저리를 청년으로 살았던 한국인치고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 1903~77) 박사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국보 1호'라 칭하며 호방하게 살다간 무애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영문학자이면서  향가(鄕歌) 등 한국 고시가(古詩歌) 주석에 몰입하는 등 국어학자로도 활동했다.

 

0…무애 선생의 수필집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1960)는 '글과 술로 보낸 반생'이라는 의미의 책으로, 쉽게 말해 술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모은 책이다.

 열살 때 어머니가 담가 놓은 술을 몰래 퍼마시고 사흘 만에 깨어난 일, 도쿄 유학 시절 하숙방을 함께 쓰던 횡보 염상섭과 하루에 백가지 술을 한잔씩 마셨던 ‘백주회’(百酒會) 일화, 도쿄에서 노산 이은상의 하숙에 빌붙어 살면서 ‘마산 수재’(이은상) ‘해서 천재’(양주동)의 자존심을 걸고 술내기를 했던 일화 등이 담겨있다.

 다만 이 책을 단순히 술과 문학에 대한 수필집으로만 보면 별 의미가 없다. 온갖 풍파로 점철됐던 한국 근.현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서구문명에 무지했던 조국과 스스로에 대한 반성, 역경 속에도 신문물을 체득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던 한 실존자의 의지가 해학적인 필치로 담겨 있다.

 

0…나의 군 초급장교(해병대) 시절, 처음 서해 대청도에 배치를 받아 12시간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한 첫날, 나는 BOQ(독신장교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이때 대대 선임하사관이 나에게 신상명세서 용지를 내밀며 적어내라고 했다. 용지엔 이런저런 항목이 있었고 그 중 하단에 ‘즐기는 음식’과 ‘존경하는 인물’ 란이 있었다. 

 별 유치한 질문도 있구나, 하면서 나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적어 내려갔다. 좋아하는 음식: 술과 고기, 존경하는 인물: 김대중.

 

0…다음날 대대장 앞에서 전입신고가 있었고 대대장은 신고식 후 나에게 커피 한잔을 내놓으며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이 소위, 이 신상명세서 진정으로 쓴 거야, 장난으로 쓴 거야?"

 당시는 전두환이 정권을 막 잡아 살기가 등등하던 시절이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김대중은 너무 했다 싶었다. 내가 아무리 3년 의무복무를 때우러 입대했기에 진급 따위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고 하지만 이건 좀 지나친 것 같았다.

 그러면서 대대장은 씩 웃으며 "자 다시 써. 요식행위이니까. 좋아하는 음식은 그냥 김치찌개라고 해. 전방에서 술 좋아한다고 하면 찍히니까. 그리고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둬.”

 나는 그때, 뭐 그것이 대수냐 싶어 대대장이 불러준대로 써냈다. 그나마 대대장은 깨인 사람이었다.

 

0…며칠 후 나의 직속 중대장이 밤에 불렀다. 중대장실로 들어섰더니 다른 선임 소대장들과 함께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면서 중대장은 "자네 소원대로 고기에 소주가 있으니 들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게 웬떡이냐 싶어 단숨에 4홉들이 막소주와 고깃점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 모양새를 지켜보던 중대장과 선임 소대장들은 "이 친구 재미있네"라며 웃었다.

 그런 중에 중대장은 "자네, 대대장님 잘 만난 줄 알아. 전방에서 술 좋아하는 소대장은 요주의 인물로 찍힐텐데 자네는 하도 엉뚱해서 그냥 웃고 넘어간거야" 라고 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또 뭐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걸 밖으로 드러내면 되겠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라고 충고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중대장 역시 의식이 좀 깨인 사람이었다.         

 

0…그 후 나는 중대장 및 선임 소대장들과 격의없이 지내며 큰 어려움 없이 전방생활을 이어갔다.

 그 후에도 종종 회식자리가 있었고 술자리 분위기는 대개 내가 주도했다. 한잔 술에 얼큰해지면 나는 웃통을 벗어부치고 구성진 옛노래를 불러 흥을 돋구었다.

 이때부터 나는 부대 안에서도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재미있는 장교’로 알려졌고 이 때문에 인기가 꽤 있었다.  

 그렇다고 할일도 안하고 농땡이만 부린 건 아니다. 할일은 똑부러지게 하고 회식 때는 화끈하게 판을 돋구니 다들 좋아했던 것이다. 

 이처럼 술을 잘만 활용하면 대인관계에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0…지난주 90세로 돌아가신 한상훈 선생도 반주(飯酒)를 즐기셨다.

 언젠가 한식당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사모님과 함께 조촐한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나를 보시고 "소주 한잔 해" 라며 잔을 건네셨다.

 80대 고령에도 매끼 반주를 곁들이셨고 그것이 건강에 오히려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인생살이 이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사누..." 라고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명절 때는 나를 불러내 양주 봉투를 건네주시기도 하셨다. “자네가 술 좋아한다는 소리 들어서 알고 있어”라시며… 그 다정하시던 모습, 이젠 볼 수가 없다.    

 

0…나는 청년시절부터 술을 즐겨왔다. 하지만 센 편은 아니다.

 술은 적당히만 즐기면 인생의 윤활유가 될 수도 있음을 그동안의 다채로운 경험들이 말해준다. 나도 언젠가 ‘나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를 써볼까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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