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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70)-서머나(Smyma) 폴리캅 기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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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데, 2000년 동안 동양과 서양 역사의 회오리바람 속에 있었던 소아시아의 도시들인들 어찌 멀쩡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사용이 가능한 야외극장과 또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오는 많은 고적들이 고적답게 복원되어가고 있는 에베소를 떠나 도시의 이름마저 이즈미르(Izmir)로 바뀐 옛 서머나로 가는 동안 가이드는 “서머나에는 옛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중에 아직까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폴리캅 기념 교회가 있기에 그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며 창 밖으로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라고 합니다.

한 낮이 지나 많이 기운 햇빛을 받으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낚시꾼들이 많으면 경기가 안 좋은 것이고, 낚시꾼이 별로 없으면 경기가 좋다는 이 지역 경제 지표라고 합니다.

지금은 많지 않은 정도랍니다. 누구나 다 알기 쉬운, 참 좋은 경제 지표를 가진 서머나! 배가 고프면 낚시대를 드리우면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고양이도 아닌 사람이 생선으로만 살 수가 있을까요? 이그, 그 놈의 의심은….

서머나 교회는 사도들이 모두 죽고 난 후부터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기 전까지 있었던 초대 교회였다고 합니다. 이 핍박과 순교의 시대에 제자들과 사도들이 모두 죽으면서 “사도 시대”가 끝나자, 그리스도인들은 목자를 잃은 양처럼 외롭고 힘겨운 신앙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머나 교회는 신약성경에서는 요한 계시록 외에는 그 기록을 찾아볼 수도 없기에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 곳에도 예루살렘에서의 성령강림을 체험한 사람들에 의해 생긴 “자생 교회”의 교인들에게 바울이 에베소에 체류할 때 전도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행 19:10).

계 2:8에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시작된 편지에서 예수님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 2:9)라고 칭찬하시며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고 권면하시었습니다.

아마도 악의 영들이 외롭게 신앙을 지키며 힘겹게 버텨나가던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강력한 핍박을 가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뿌리째 뽑아 없애려고 했던 것을 예견하시었던 것 같습니다.

비잔틴(동로마) 제국은 도시 곳곳에 기독교 유적을 남겨 놓았으나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파괴되어 거의 사라졌으며, 수차례의 지진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대파된 데에다가 현대에 와서는 터키에서도 3번째로 큰 도시 소리를 듣도록 개발이 되다 보니 서머나 교회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1690년, 희랍정교회가 지은 “폴리갑 기념교회”가 아직도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여 심한 교통 체증을 뚫고 교회에 도착한 시간은 교회가 문을 닫을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늦은 오후였습니다.

교회사에는 서머나 교회와 관련된 유명한 두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안디옥 교회 감독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오늘 소개하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Polikarp, A.D. 69-156년)입니다.

교회 안을 둘러보며 듣는 폴리캅의 생애는 믿음과 신뢰의 삶, 그리고 “죽도록 충성한 삶”, 바로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사도 요한을 찾아가 가르침을 직접 받음으로 요한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폴리캅은 서기 115년경부터 156년경까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되어 복음, 특별히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고, 그 가르침을 그의 삶으로 증명했던 인물로, 폴리캅은 교회사에 있어서 두 시대, 곧 “사도 시대”와 “후 사도 시대”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폴리캅은 “영원히 유일한 진리는 사도들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이며, 교회가 전승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하나의 진리인지를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선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이교도의 무리에서부터 하나님의 교회에로 회유해서 개종시켰다며, “아시아의 교회 전통은 폴리캅이 사도들에게 받아옴과 마찬가지”라고 이레니우스는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이레니우스(Irenaeus 115~202) [이단 논박]의 저자. 교회가 생긴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들끓었는지는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요. 문제는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일텐데 그 당시에는 이단을 규정하는 어떤 문서나 교리 신조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이단을 "사도적 전승에 반하는 가르침"이라고 정의하였다고 합니다.

주후 160년경, 교회가 핍박을 받았을 때에 86세 노령의 폴리캅은 지방 총독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은 폴리캅의 덕망을 보고 “예수만 부인하면 살려주겠다!” 하였으나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하고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사자 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으나, 사자들이 폴리캅에게 달려들지 않자 총독은 경기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이에 성이 난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리라고 외쳐댔다고 합니다.

그래서 총독은 어쩔 수 없이 폴리캅을 화형 시키라고 말을 하였고….(어째 멀리 유대 땅에서의 빌라도와 비슷한 행동 같지 않은가요….?) 바로 이 상황을 그린 그림이 천정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린 화가의 손을 묶어 놓은 채….

조금 더 자세히 보았으면…. 하였지만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빨리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퍼뜩 본 벽에 걸려 있는 튜린의 성의 복제품(?) 또한 특이 하였으나 자세히 볼 시간이 없으니 어이 할꼬…? 또 언제 다시 온단 말인가…!

교회 마당을 나오면서 생기는 의문, 왜 교회에 성물들을 걸어 놓아야만 할까….?

아마도 눈으로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만 믿을 수 있는 우리 인간들의 사고방식 때문이리라…. 그리고 교회는 그걸 이용하여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하고…?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고 그러셨는데......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고 권면하신 말씀 위에 폴리캅의 생애를 되뇌이며 바닷가를 끼고 북상하여 옛 버가모 유적지로 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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