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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술(鍼術, Acupuncture)(3)

 

(지난 호에 이어)

한의학의 경락과 기에 대한 이해와 연구

 

침술에서는 인체의 경락(經絡)과 기(氣)에 대한 공부가 필수인데 한의학의 경락(經絡)과 기(氣)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과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침이나 뜸을 놓을 때 경혈(經穴)에 놓는다고 말한다. 경혈(經穴)은 피부나 근육의 중요한 반응 부위로 우리 몸에는 약 361개의 경혈(經穴)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각 경혈(經穴)을 이어 기혈(氣血)이 순환하는 통로를 경락(經絡)이라고 부른다. 한의학에서 경락(經絡)은 인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주관하는 통로로, 경락(經絡)을 잘 조절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머리 꼭대기에 있는 ‘백회(百會)’란 경혈(經穴)에 침을 놓아 치질을 치료한다. 한의학에선 경락(經絡)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서양의학에서는 몸 안의 통로를 혈관•림프관•신경계 등을 꼽는데, 경락(經絡)은 서양의학에는 없는 완전히 다른 통로인 것이다.

 

한의학 고전인 《黃帝內經》에는 경락(經絡)이 근육, 내장, 뼈 심지어 손톱과 머리카락까지 뻗어 있으며 이를 통해 기(氣)가 흘러 인체가 살아 움직인다고 기술돼 있다. 하지만 경락(經絡)은 현대의학인 해부학적 실체가 없다.

 

경락(經絡)을 통한 한의학적 치료가 실제로 임상에서 서양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치료에 효과를 보이면서도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학문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침의 치료 효과를 경험하면서도 막상 “왜 그런 효과가 있는가”라고 물으면 애매한 ‘경락(經絡)’과 ‘기(氣)’의 개념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서양환자가 대부분인 캐나다의 종합병원에서 진료하다 보면 서양 환자들이 침이 어떤 원리로 자신들의 질병을 치료하는지에 질문을 할 때 동양철학이 기초를 이룬 경락(經絡)과 기(氣)의 흐름을 영어로 설명하는 내 자신의 대답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서양사람들을 이해 시키는데 한계를 느꼈던 적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침 치료를 찾는 서양사람들 상당수가 동양철학이나 동양의학을 존중하고 부작용이 적은 자연치료라는데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20년 이상 한의사로 임상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생각으로 현대는 과학이 인간의 문명을 주도하고 있고 거의 모든 문제들을 과학적 증명이 요구되는 서양의학 관점에서, 동양철학에서 출발하여 발전한 한의학 이론을 현대과학 이론적 관점으로 설명을 한다는 그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침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첫째, ‘경락(經絡)’이나 ‘기(氣)’가 인체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둘째, 침으로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등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과거 경락이나 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에는 해부학, 생물학, 신경학, 세포학 등 현대 의학의 모든 지식이 총 동원되었다. 실제로1960년대 초 경락의 해부학적 실체를 밝히려는 시도가 있었다. 1941년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김봉한 박사는, 북한에서 1961년 8월 ‘경락의 실태에 관한 연구’ 논문을 내놓으면서 ‘봉한학설’을 통해 경락의 실체를 밝히려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특히 북한 정권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전자현미경, 방사선 추적장치 등 첨단 연구장비를 통해 경락의 실체와 관련된 논문을 5편이나 발표했었다. 당시 김봉한 박사는 “경혈자리에서 지름 0.5~1.0mm 형태의 작은 조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조직은 원형이며 원형 내 여러 가닥이 다발로 돼 있다고 했다.

 

김봉한 박사는 경혈 자리의 조직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봉한소체’로 불렀고, 각 봉한소체가 연결된 관을 ‘봉한관’으로 불렀다. 즉, 봉한관이 경락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체에는 신경계, 혈관계, 림프계와 다른 제3의 순환계가 있는데, 경락을 잇는 관(봉한관)을 따라 액체(봉한액)가 흐르며, 그 속에 세포를 재생하는 ‘산알’이란 일종의 DNA 알갱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학설은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으나, 후속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필자가 과거 중국에서 한의대 인턴기간 중 북한에서 파견 나온 서양 의학 소화기내과 과장인 의사와 6개월 정도 같이 일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황장엽씨가 한국으로 망명하던 시기여서 북한의사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 했고 필자는 병원 기숙사에서 모두 잠든 밤늦은 시간에 한국의 여러 신문, 책자 그리고 방송 자료 등을 북한의사에게 몰래 전해 주었고 같은 민족이라 사적이고 깊은 이야기도 자주 나누었다.

 

그때 필자가 한의학의 경락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김봉한 박사에 대해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왜 당시로는 혁신적인 증명을 한 김봉한 박사의 이론이 더 이상 발전이 없고, 그리고 김봉한 박사는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당시 북한 의사의 대답으로는 김봉한 박사가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어느 날 갑자기 숙청된 것 같다고 하였다. 만약 김봉한 박사가 한의학의 경락을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을 완성하였다면 한의학 발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으리라 생각된다.

 

그 후 김봉한 박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북한의 보건의료 인력 양성 차원에서 의사들이 한국전쟁 후 납북됐다는 사실도 김봉한 박사가 숙청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북한은 해방 직후 의과대학이 한 곳도 없었다. 이에 1948년 평양의전과 함흥의전을 의과대학으로 바꾸면서 부족한 의사를 채우기 위해 20여 명의 의사들을 납북시켰다.

 

2013년 북한인권의사회는 “남한의 총 18명의 의사가 납북됐고, 이 중 10명이 서울대 의대 교수”라고 밝힌 바 있다. 김봉한 박사도 이들 중 한 명에 속해 있었다고 나온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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