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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아내여! 매일 밤 나의 사념은 이 철조망을 뛰어 넘는다오. 생각은 얼굴이 없기 때문에 당신이 그 모습을 확실하게 그려낼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오. 생각은 바람 속에 이는 한낱 광풍 같은 것, 철조망을 뛰어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오. 이 죠만니노가 고요하고 추운 겨울 밤에 꿈처럼 밝게, 바람처럼 넘나드는 모습을 그려보시오.” -본문 중에서

 

나의 후손에게 주는 첫 번째 편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인류는 방금 살아온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나면, 미래에 닥칠 전쟁을 피하고저 갈망하게 된단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재앙은 우려가 겪는 최후의 고통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 또한 언젠가는 어느 육군 막사로 출두하라는 소집영장을 편지함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군대 막사에서 너는 네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네 이웃에게도 똑같이 해를 끼칠 도구와 장비를 정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랜 영고성쇠를 지낸 다음 불행했던 너의 조상처럼 강제수용소에서 너의 인생을 마칠지도 모른다. 네 머리 위의 감시 탑에 서있는 경비병이 영국인? 러시아인? 프랑스인? 독일인? 혹은 이탈리아인이 될지 정확하게 말해줄 순 없구나. 국적이 어디건 네가 수용소를 탈출하려고만 하면 네 등에 총을 쏘려 하겠지. 너에게 닥칠 일은 이것뿐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 경험에 비추어, 왜? 그리고 어떻게? 네가 철조망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내가 말끔한 포병 중위 제복을 입고 막사 연병장에 서있을 때, 차렷! 하는 나팔소리와 함께 아주 굉장한 일이 벌어졌다. 드디어 내 발뒤꿈치에서 찰칵하며 맞부딪쳐 울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이 사건이 왜 중요한가를 알려면, 이른바 나의 “군인답지 못한 태도”에 대한 길고도 서러운 이야기부터 들어야 한다.


 11월    어느 음산한 날이었다. 나는 강제 징집영장을 가지고 신고를 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에서 가장 안개가 짙게 끼는 곳으로 가 헤매던 끝에 군대 막사를 간신히 찾아냈다.


막사에 도착하자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듯한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당신은 지금 편성중인 제 6고사포 부대의 중대장이 됩니다.”


나는 과거에 야전포병이었으므로 대공포 와는 관계가 없음을 그에게 누누이 설명했다. “상관없소!” 그는 내게 공책과 서류를 건네주고 있는 하사 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내게 흔해빠진 펜 한 자루를 건네주며 엄숙하게 말했다. “이 보급품들로 한 달을 사용하도록 하오. 더 필요하다고 청하는 일이 없도록!”


그는 출입구에서 나를 배웅하며 장부와 명단을 곧 작성하라고 충성스럽게 충고해 주었다.


“그 물품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니까.” 그는 다시 다짐했다. 나는 그의 충고에 고맙다고 말하고 내가 머물 곳은 어디인가 물었다. 


“물론 중대 사무실이지. 각 부대 단위로 사무실이 있으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어디에 있나요?”


“이 풋내기 장교가 나를 미치게 만드는군! 그런 질문이 어디있냐?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중대 사무실이 될만한 장소를 찾게 될 테니까.”


“하지만 저는…”


“머리를 써요!” 


그는 내가 나가자 문을 꽝 닫으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그 펜을 발로 밟았다. 


“한 달치 보급품이여, 안녕!” 나는 그 펜에게 우울한 인사말을 던졌다.


나는 묵직한 공책과 서류를 들고 휘청거리며 막사 주변을 맴돌았다. 중대 사무실로 적합한 한 장소를 구하려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병참부에 있는 한 사병에게 20리라를 슬쩍 접어주어도 허사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끝에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는 미래의 나의 고사포 부대에 충성을 다하고 중대 사무원으로 봉사해 줄 것을 스스로 다짐해 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를 장부에 등록하고 서류뭉치를 그에게 넘겨준 다음에 막사를 함께 찾아 나섰다. 결국 나의 참모는 변동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 구한 그 신병을 예인선에 태우고 나는 일단 막사에서 나오기로 결심했다.


“우리 사무실은 여기다. 자네는 직원으로 쓸 부하를 한 명 골라서 조용히 일을 시작하게. 난 호텔로 옮길 테니까.” 


그날 낮에 세든 방으로 돌아와 신병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일을 쉽게 처리하도록 75개 가량의 팩스에 사인을 해주었다. 징집된 병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지레 짐작하게 되었고, 내가 들어있는 하숙집도 명성이 떨어져갔다.

 

그 외엔 모든 일이 막사 구역 내에서 나의 수색 임무가 끝날 동안 잘 진행되어 갔다. 그러나 “군인답지 못하다”는 딱지가 늘 붙어 다녔고, 나는 늘 의혹의 대상이 되어갔다.


이와 비슷한 작은 일화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것은 내 평판을 더 망쳐놓았다. 그로 인해 파탄이 오기 시작한 최후의 사소한 일은 “커피 유죄”였다. 어느 날 아침이었는데 나의 부하 60명이 부엌에서 얼어난 소동 덕분에 커피를 한 방울도 못 마시게 되었다고 내게 알려왔다. 나는 그들을 일렬로 세워 막사 밖으로 행진해 나가서 가까운데 있는 네 군데 카페로 분산시키고 내 호주머니를 털어 그들을 대접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상관들이 나의 그런 행동을    회의적으로 보게 되어 “군인답지 못한 태도”란 일화가    생겨났고, 그 일은 내게 너무나 큰 피해를    입혀 고사포 부대 중대장 직책마저 박탈당했다.


내가 전방에 있었더라면 그 유명한 대공 고사포 무기를 보았을 텐데, 나는 후방에 남아있어야 할 운명이었다. 고사포 부대 일원으로써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유감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내 관심은 발뒤꿈치를 찰각 붙이는 일과 관련되는 또 다른 고통으로 어지러워 있었다.


대령들도 꿈을 꾸는지? 그렇다. 대령들도 일반 사람이나 예비역 장교들처럼 꿈을 꾼다. 어쩌면 그들의 꿈은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군대의 규칙은 꿈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대부분의 고참 상관들은 천사의 꿈을 꾼다. 그 천사들은 푸른 날개와 금발을 달고 시인과 젊은 아가씨의 꿈을 찾아 지상에 살포시 내려온다. 


그 천사가 어느 대령의 발치에 내려앉을 때만 그 대령은 발뒤꿈치에서 찰칵 소리 내 식사를 계속했다. 고개 숙인 사람들 머리 위로 빨갛게 타오르는 불빛 문자가 “군인답지 못하다”고 써있는 것같이 보였다. 


 나중에는 찰각 소리를 낼 수 있는 육군중위와 타협을 보았다. 그는 문가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서면 찰칵 소리를 내주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작위수여작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도 꼭 두 번밖에 못했다. 첫 번엔 내가 차렷한 다음에 찰칵 소리가 들려왔고, 두 번째는 내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을 때 이미 소리가 나버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게서 본래 나던 소리인 퍽! 소리로 되돌아갔다. 대령은 내가 그의 가슴에 핀이라도 찌르는 듯이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퍽! 퍽! 몇 번이나 나는 그 비참한 소리를 들어야 했는지!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 내가 막사 뜰에 서서 나팔소리에 차렷 자세를 취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내 발뒤꿈치에서 찰칵 소리가 난 것이다. “드디어 들려 왔구나!” 나는 의기양양하여 소리질렀다. 


그런데 나는 내 발을 내려다 보고 소리가 들려온 이유를 알았다. 한껏 부푼 자만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신고 있는 것은 정규군인의 장화가 아니라 바닥이 3인치나 높은 나막신이었다. 그때, 나는 전쟁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것이 내 이야기의 전부이다. 다음엔 내가 어떻게 해서 폴란드 막사의 중앙 뜰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다음에 얘기해 주마. 그 동안 너의 어머니와 할머님과 누이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6865까지 세는 것을 배워두어라. 그 숫자는 희생적으로 헌신한 너의 아버지의 수용소 번호란다.  - 아빠로 부터

 

검은 마돈나


지금 나는 전염병으로 폐허가 된 어떤 시가지를 걷고 있는 듯하다. 거리엔 마치 누가 쫓아오는 듯 급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만 뜨문뜨문 보일 뿐이다. 그 사람들은 게슈타포 출신의 대위가 앞장서고 의심 많은 통역관이 뒤따르는 우리들, 열 명의 전쟁 포로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구나. 그 시선은 우리를 재빠르게 지나쳤지만 통역관도 알아채지 못하는 웅변이 들어있었다.


1939년 이전의 체스토초바(Czestochowa) 시 인구는 18만 명 이었다. 독일군이 들어온 지 이 삼일 후에 그 중의 5만 명이 죽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했다. 넓고 텅 빈 광장은 마치 사람이나 집이나 모두 그곳에서 추방되어 버린 듯이 허망해 보였다. 


남아 있는 건물들은 유령이 나올 듯 썰렁했고, 겉모습은 지난 몇 해 동안 고통을 받아온 비극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리는 어수선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반쯤 내린 덧문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아직 잠그지 않은 진열장엔 통조림과 생산품 상자를 진열해 놓았다.


“Patria Bar…”라는 이탈리아 글자가 황폐한 카페 입구에 붙어있는데, 마치 수많은 외국인 가운데서 낯익은 모습을 하나 발견했을 때 떠오르는 아픔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거리는 머리칼 한 오리 없는 내 머리 위로 윙윙거리는 바람결에 쓸려가 버린 듯 깨끗했다. (다음 호에 계속)

 


 
 

 

 

(옮긴이 주) 폴란드 쳉스토호바 수도원의 검은 성모님 상은 약 600년 전부터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누가복음서 저자인 누가 성인이 성 가정(예수님과 그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 키프로스 산 식탁 위에다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은 것을, 누가 복음에 기록했다는 설이 있다. 


목판 성화인 검은 성모님 상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했다는 헬레나 왕비가 예루살렘에서 발견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벨즈를 거쳐 1382년 8월에 쳉스토호바의 야스나고라 수도원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죠반니노 과레스끼가 1942년~1945년 사이에 전쟁포로로 폴란드 수용소에 있을 때 이곳을 방문한다. ( <나의 비밀일기> ‘검은 마돈나, 9월 20일 일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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