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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듬는 시조

 

 나는 기분이 좋거나 울적해지면 노래는 부르는 습성이 있다. 기분이 좋으면 그 기분 좋은 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토록 유지하기 위하여, 울적하면 울적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지금도 자동차를 몰고 길에 나서면 자동차 안에서 흘러간 가요를 부를 때가 많다. 우리 집에서는 집 안에서 노래는 못 부르게 하니 어릴 때는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날에, 커서는 자동차 안에서 내 마음대로 운전대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어릴 적 밤늦게 예안읍에서 혼자 생가 역동집으로 돌아올 때는 인가가 없는 청고개를 넘어야 했다. 양쪽 산에 있는 무덤 속에서 귀신이 나와 뒤에서 내 목을 꽉 잡으며 ‘동렬이 이놈!” 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할 때는 온몸이 얼어 붙는다. 이런 비상상황에는 목이 터져라 크게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넘곤 했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주로 용감무쌍한 군가가 대부분.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 만이냐/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이런 씩씩한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데 아무리 귀신이라 한들 이 용감한 소년에게 어찌 함부로 덤벼들 생각을 하겠는가.

 

 나는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 직장을 얻은 후부터 내 기분을 새롭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옛시조를 흥얼거렸다. 한창 때 나는 우리의 옛시조 300수 정도를 외웠으니 화장실에서나 길을 걸을 때 시조를 외운다는 것은 내게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다. 아마도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는 강단에 서야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꾀로 시작한 것이었지 싶다.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아 웃지마라

구만리 장천에 너도 날고 나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飛鳥)니 너와 내가 다르랴’

 

 위에 적은 숙종 때의 무신 이태의 시조를 읊으면 내가 다른 백인교수에 비해 못한 것이 뭣이냐는 항의성 자기주장이니 20배 30배 넘는 용기가 용솟음친다.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이긴 것 같은 용기-.

 

 우리의 감정을 새롭게 바꾸는 것은 노래나 시조뿐이 아니다.  우리가 행하는 행동 모두가 우리의 감정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맑은 하늘에 몇 점 구름이 떠가는 날 숲길을 따라 산책을 나서는 것도 기분전환, 술을 한잔 마시며 좋은 친구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기분전환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는 모든 행동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분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된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유쾌한 행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결과가 괴롭거나 슬픈 행동을 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 하나는 결과가 슬프거나 유쾌하지 못한 생각이나 행동을 자꾸 되풀이하면서 우울증이 없어지기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행동도 그것이 유쾌한 결과를 가져올 행동이라면 억지로라도 그 행동을 하고 나면 유쾌한 감정이 뒤따르는 것이다.

 

 나는 몇 주 전에 마음을 보듬는 시조 한수를 얻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얘기는 이렇다. 나는 노래 대신 자주 흥얼거리는 시조 구절이 하나 있다.  

 

 “…오뉴월 하루 해가 이다지도 길다더냐/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것이 없느니”

 

 이 시구는 노산(鷺山) 이은상의 ‘적벽놀이’라는 기행수필에 나오는 시조다. 지금부터 꼭 67년 전 내가 내 고향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국어시간에 배운 시조다. 그런데 나는 이 시조의 맨 처음 시작을 잊어버려 중장과 종장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당해서건 내가 너무 성급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오뉴월 하루 해가 이다지도 길다더냐/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느니”로 끝나는 시조 구절만 외면 먼지 날리는 황토길에 물을 뿌리는 것처럼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조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문제는 이 시조의 시작, 즉 초장을 잊어버려 생각이 안난다는 것이다. 내깐에는 무진 애를 썼으나 헛수고였다. 방법이 없어서 몇 주 전 어느날 나장환 형에게 전화를 하고 “나형도 틀림없이 국어시간에 배웠을테니 좀 찾아 달라”고 실로 애절한 부탁을 했다.

 

 나형은 나와 동갑. 지금부터 한 30여년 전 내가 런던 온타리오에 살 때 조지훈의 시 “빛을 찾아 가는 길”의 시작을 잊어버려 찾고 있었다. 그때 나형의 도움으로 그 시의 시작을 찾아냈다. 이것이 나와 그의 교제의 시작이었다. 나형은 뛰어난 기억력에 책을 많이 읽는 선비 타입의 노인. 조선 시가(詩歌)에 대한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시가를 좀 아는 체 혼자 떠들다가도 나형이 있을 때는 입조심을 한다.

 

 그런데 생각 외로 나형에게서 빠른 답이 왔다. 노산의 ‘적벽놀이’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 시조는 다음과 같다.

 

적벽유()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도 꿈이라거든

여름날 하루 해가 그리도 길더구나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느니’

 

 “여름날 하루 해가 그리도 길더구나”를 나는 “오뉴월 하루 해가 이다지도 길다더냐”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잘못 기억한 파편이 노산의 오리지널보다 못하지는 않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자 가슴이 뿌듯해졌다.

 

 인간의 기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장기 기억으로 머릿속에 일단 저장된 정보는 처음 저장된 상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정보에 따라 먼저 저장된 기억 내용이 흘러나온 용암이 천천히 모양을 바꾸듯 기억된 내용도 바뀐다고 한다.

 

 “여름날 하루 해”가 “오뉴월 하루 해”로, “그리도 길더구나”가 “이다지도 길다더냐”로 바뀌어 있었다. 배운 지 67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 정도로 원본 못지않게 근사한 형태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대견한 것. 칭찬이 마땅하다는 어린아리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선 보배 같은 시조를 한 수 얻게 되었다는 흥분 속에 나형에게 고맙다는 전화인사도 깜빡 잊고 며칠을 보냈다.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거나 가라앉히는 힘을 주는 것은 비단 노래뿐이 아니다. 그림이나 시(詩)나 소설 같은 예술작품 모두가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예술의 장르(genre)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마는 어릴 때 익혀둔 시가(詩歌)는 어린 시절을 되살려 오는데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마치 홍난파의 ‘고향의 봄’을 나직이 부르면 고향마을이 눈앞에 살며시 내려앉은 것처럼-.

 

 내가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S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짧은 말 짓기에서 잘 못하면 그 커다란 손으로 내려치는 출석부 형벌이 모하마드 알리한테 머리를 한방 맞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나는 한 번도 맞아보진 않았다. 아마 내가 무척 아첨을 잘하고 귀엽게 굴었던 모양이다.

 

 이제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 내 나이 어느덧 여든. 잃어버린 시 구절은 기적적으로 나에게 되돌아왔다.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도 꿈이라던 그 세월은 경상도 안동에서 흐르던 세월이나 찬바람 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흐르는 세월 간에 아무런 차이없이 흐른다.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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