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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kim
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17)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그렇게 한바탕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후 3시가 다 되었고 나는 커다란 대야에 송이를 하나씩 담고 가벼운 담요를 덮고 집에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영실이는 “잠깐. 동네 입구까지만 내가 같이 가줄게. 너 혼자 가면 외부인 인걸 금방 아니까 무조건 수색당할 거야, 송이를 다 뺏기는 건 둘째고 일단 당의 충성자금을 빼돌린다는 혐의를 쓰게 되면 잡혀 갈 수도 있어”하며 나를 감시망을 벗어날때까지 동행해주겠다고 하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일을 무릅쓰고 나를 적극 돕고 있는 영실이가 고마워 가슴이 뭉클하였다. 둘이는 오랜만에 함께 걸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동네 길목 두세군데에 감시대가 있었는데 머리에 이고 가는 게 뭐냐고 묻자 그는 태연하게 “방앗간에서 국수 내서 집에 가는 길이요, 얘는 내사촌동생” 그리고 눈을 찡긋했다. 그렇게 드디어 마지막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한 그는 조심히 가라고 이르고 돌아서 갔다. 머리에 이고 집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왔지만 나는 힘든 줄 몰랐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는 나를 보자 깜짝 놀랬고 우리는 바로 그 길로 고씨 집으로 가져갔다. 누워서 빈둥빈둥하고 있던 고태환 아저씨는 커다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게 뭐야? 와 뭐가 이렇게 많아? 와! 난 네가 진짜로 송이를 가져올 줄 몰랐다.” 그는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개인거래가 금지된 송이를 설마 내가 진짜로 가지고 올 줄 몰랐다고 한다. 개인이 이렇게 많이 가져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하는 그의 말에 내가 다 놀랄 지경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만하고 무시하는 태도는 사라지고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로 싹 바뀌었다. 갑자기 그는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어제 1킬로그램 700원 준다고 했잖아. 수량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으니 킬로그램당 1000원 줄게. 그리고 내일도 또 이만큼 가져올 수 있지?” 뜻밖의 힁재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송이를 다 분별하고 나서 커다란 돈뭉치를 두 개나 들고 와서 세주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거의 세배의 이익을 남겼다.

 그 길로 바로 3천원을 빌려준 선생님께 500원을 더 붙여서 돌려드렸다. 하루만에 500원이 더 생기게 된 그 선생님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돈이 필요하면 더 쓰라며 언제든지 빌려 쓰라고 했다. 그 다음 날은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왔는데 전날 미처 몰랐던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모두들 송이를 나한테 판다고 온 것이다. 나는 외상값부터 정산을 하고 친구한테 빌린 돈도 500원 이자 쳐서 갚았다. 친구는 나한테 너무 고마워했지만 사실 나는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의 우정과 의리에 머리가 숙여졌다.

 그날은 전날보다 두 배 더 많은 양을 받았는데 나 혼자 다 가져갈 수가 없어 친구 영실이도 대야 하나를 머리에 이고 함께 우리집까지 가주었다. 우리집에다 내려놓자마자 그는 얼른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거의 20킬로그램 정도의 송이를 가져다 팔아 이틀새 나와 엄마는 난생처음 큰 돈뭉치를 세어보면서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드디어 셋째 날에도 더 많은 현금을 몸에 지니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들어서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의 엄마와 마주쳤다.

 “ㅇㅇ야. 오늘은 안되겠다. 요 이틀간 송이를 누가 비싸게 사갔다고 당간부에게 고자질해서 어젯밤에 우리집에 보위부 간부들이 찾아왔었다. 사실 확인하려고” “아니, 정말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영실이한테 따져 묻더라, 너를 잘 아느냐, 이름이 뭐냐, 어디에 사냐 등등. 그런데 영실이가 너를 잘 모르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냥 자기 집을 소개해줬을 뿐이라고 송이를 샀는지 자기는 모르고 유치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느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지. 그리고 나는 방앗간에 가 있어서 하나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널 들키기 전에 돌려보내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나는 돈 버는 것보다 영실이가 위험에 빠지는 것이 더 걱정이 되어 인사를 나누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고태환 아저씨는 이미 뒤에 어마어마한 연줄이 다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나는 그런 인맥이 없어 잡히면 끝이다. 그가 만약 내 이름을 불었더라면 난 영문도 모르고 바로 잡혔을지도 모른다. 까딱하면 무상몰수 되고 본전도 건질 수 없는 도박과도 같은 판에서 영실이는 선뜻 자기 돈도 내어주고, 자기 이름을 내걸고 송이를 외상에 가져가게 해주었다.

 그 애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나였으면 친구에게 선뜻 위험을 감수하며 집을 내어주고 돈까지 빌려주고, 또 외상 보증까지 설 수 있었을까? 혹시 잘못되면 그 역시도 정치적인 감투를 뒤집어쓰고 잡혀갈 수도 있었을 그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끝까지 도와준 내 진정한 친구 윤영실에게 진 마음의 빚은 아직까지 갚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그는 나를 믿어준 진실되고 의리 있는 진짜 친구이다. 정말 그때의 순수하고 소박했던 30여 년 전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그때가 그립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은 해군에서 제대한 그의 오빠는 결혼을 했는데 올케가 해산하던 도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실이 엄마가 어린 손자를 돌본다고 들었다. 나는 그 후로 그를 두 번 정도 더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세상살이가 각박해지면서 살기가 바빠 더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것은 참 많았으나 내가 갚은 것 하나도 없어 지금도 가슴이 아련하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친구 영실이, 정말 많이 보고 싶다. 내가 북한에 갈 수 있다면 꼭 만나봐야 할 친구가 바로 영실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오랜 세월 동안 굶주림 속에 끼니걱정 하느라 굶고 다니는 건 아닌지. 영실아. 내가 너를 기억하듯이 너 또한 나를 기억하며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 언젠가 꼭 만날 때가 있을 거야.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제3장 우리의 삶은 전쟁터였다

 

1. 엄마에게 사드린 부츠

 북한에서는 국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부수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외화벌이였다. 외화벌이란 천연자원을 채취하여 외국에 팔아 외화를 버는 것을 말한다. 1980년대에도 외화벌이(합영회사) 회사들이 꽤 있었고 주로 일본이 그 파트너였다. 그들은 북한에서 생산되는 알짜 농수산품들을 모조리 가져갔는데 주로 명란, 털게, 도루메기(도루묵어 알배기만), 송이, 등이었다. 산을 낀 마을과 해변마을들에 커다란 부수입의 원천이 되었고 특히 1980년대에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1980년대까지 동해바다에서 겨울이면 명태가 많이 잡혔다. 아버지 공장에서는 부업선으로 명태를 잡아 종업원 공급을 하였다. 식구 한 사람당 300킬로그램씩은 주었던 기억이 난다. 전국의 기관들이 내가 사는 00도시로 모여들어 명태잡이를 한다. 명태가 쏟아지는 장소마다 때기칼(명태할복용칼)과 바께쓰를 들고 쬐질쬐질한 솜동복을 입은 여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명태를 실어온 기관에 명란만 바치고 나머지 내장은 가져간다. 가져갈 때 바께쓰를 검사한다. 바께쓰 속에 명란을 감춰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케 감춰가지고 집에 온다. 외화벌이 기관들에서는 일본제 방한복, 타이쯔, 수지장화, 머리수건 등을 명란과 교환해주었다. 그래서 명태 밸을 따는 이유가 부식물 해결에도 있지만 일본제 상품을 구입하는데 있었다. 명란은 1,2,3등품으로 분리하여 받는다. 해변가에서 나서 자란 다른 여인들은 우리보다 속도가 몇 배나 더 빨랐고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내장을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명태 밸따기에 서툴기 그지없는 엄마와 나는 거북이처럼 느린데다가 둘째 언니는 엄동설한에 밸 따기가 싫어 매번 핑계를 대고 빠졌으며 큰 언니는 직장에 일 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명란을 많이 획득할 수가 없어 비싸고 좋은 제품들은 받을 수 없었다. 그 대신 다른 내장들은 겨울내내 음식재료로 해먹을 수 있었다. 겨울철에 무를 넣고 싱싱한 내장도 함께 넣고 끓여 먹으면 소금만 넣었는데도 정말 맛있다. 창란은 하나씩 손질해서 무를 넣고 창란 젓을 만드는데 겨울내내 명란젓과 창란젓은 참으로 고급 반찬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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