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

 

김칫국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한국 사람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컬컬한 김칫국 생각이 절로 나니 배가 더욱 고프다.

 

 내 어렸을 적을 추억해 보면 국을 유난히도 즐겼던 우리 집안인지라, 일 년 내내 밥상에서 철마다 다른, 여러 가지 국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전에 한국의 다른 집들도 그랬겠지만, 우리 집 역시 밥상에 국이 올라와야만 비로소 밥상차림이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밥상준비에 늘 국거리를 신경 써야만 하셨으리라. 오빠는 하도 국을 좋아하고 많이 먹어서 그때의 별명이 “국장” 이었다.

 

 지금이야 한국이든 캐나다든 시장이나 마켓에 가면 일 년 내내 국거리나 반찬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오십 년 전만 해도 비닐하우스가 없던 시절의 겨울에는 푸른 채소를 먹을 수가 없었고, 음식을 저장할 냉장고가 없었으니 어머니들의 고충이야 다 말해 무엇 하겠는가.

 

 봄에는 향긋한 냉잇국, 여름에는 새큼한 오이 냉채 국,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콩나물국과 시래기 국, 달작 지근한 시금칫국, 근댓국, 애호박과 호박잎을 넣은 된장국, 우거지 국 등을 잊을 수가 없다.

 

 무를 납작납작 썰어 넣고 콩나물과 계란을 풀어 넣은 북어 국도 시원하며 단맛이 그만이다. 생일날에는 향긋한 바다 냄새 나는 김도 안 나면서 뜨거운 미역국이 지금은 왜? 그 맛이 아닐까?

 

 엄마는 가을이 되면 겨울 국거리를 위해 무청이나 배춧잎, 고구마 순, 토란줄기 등을 처마 밑에 새끼줄을 치고 걸어 말렸다가 겨우내 국거리로 삶아 사용하셨다. 또한 고기 집에 가셔서 큼직큼직하게 썬 사골을 한 뭉치 사오시면 아랫방 연탄불에 큰 솥을 걸고 여러 날 동안 고셨다.

 

 뼈 곤 국물을 큰 항아리에 붓고 또 고아서 붓고 하기를 그 몇 번이었던가. 일여덟 번도 더 고았으리라. 아마도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고셨던 것 같다. 항아리 안에 얼음이 얼면 바가지로 툭툭 쳐서 어석어석한 얼음과 함께 그 사골 국물을 퍼서 떡국은 물론 겨우내 여러 가지 국들을 끓이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겨울의 우리 집 김칫국이었다. 김장을 할 때면 엄마 아버지는 김장이 양식이라며 김장을 많이 하셨다.

 

 김치가 알맞게 익어가기 시작하면 사골 국물에 김칫국을 끓이기도 하고, 사골 국물이 없을 때는 쌀을 씻어 뽀얗게 받은 뜨물에 푸욱 익은 배추김치를 총총 썰어 넣고, 멸치, 그리고 두부를 길죽 길죽하게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 주시던 그 김칫국, 영하의 날씨에 컬컬하면서도 그 감칠맛이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뜨거운 김칫국에 갓 짜온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밥 말아 먹으면 감기몸살이 오다가도 홱 도망간다.

 

 김칫국이 간절히 생각나는 계절인데, 지난 8월 말 한국에 가서 뵙고 온 엄마가 눈에 아름아름 밟힌다.

 

 아래 위 이빨이 다 빠져서 하나도 없는 엄마는 들꽃 마을 요양원에서 주는 식사를 보니 김치도 다져서 드리고, 김칫국도 건더기는 다져서 드리는 것을 보았다. 이가 없어서 씹을 수 없으니까 다져서 드린단다. 감사한 일이다.

 

 오호라! 슬프도다. 온몸에 김칫국냄새가 흠뻑 배었든 우리 엄마, 나는 어이하여 캐나다 땅에서 살고 있으니 늘 엄마가 그리운 걸 말해서 무엇하랴.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니 어느 나라 음식을 요리 하는지 꼭 김칫국 냄새와 비슷하다. 엄마가 흰 광목 앞치마를 두른 채 “성자냐? 춥다 어서 오너라” 하고 부르시는 것 같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엄마 냄새가 나는 그 김칫국이 이토록 그리운 것은 내가 늙어간다는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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