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CHO

    조준상 (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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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8)

JC칼럼- 187

 

(지난 호에 이어)

하나의 욕망이 채워졌을 때 또 하나의 욕망이 생기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인간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이며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인 것이다.

수십 년 전 필자의 아내가 첫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서 장시간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할 때가 생각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란 벌을 주셨다는데 어찌 보면 죄는 하와가 졌는데 왜 벌은 내 아내가 받아야 하나 생각했다.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 ㄱ,동안의 생을 돌아보니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삶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괴로운 고통의 연속일 뿐 더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마치 시계의 추처럼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다 끝을 맺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욕망이 채워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또다른 욕망을 부르며 그 욕망에 대한 결핍은 다시 계속된다. 부자 위에 더 부자가 있듯이 북한의 김정은처럼 모든 욕구를 다 채우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또다른 욕심, 남한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또 그를 괴롭힌다.

 

이렇게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살다가 그 욕망이 채워지면 곧 권태를 느끼게 되고 나아가 우울증에 빠지며 마약이나 알코홀릭이 되고 또 자살까지 하게 된다.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경험했던 구약시대의 솔로몬의 기도와 독백처럼 말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그가 유신론자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신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을 최악의 지옥이라 표현했다. 이런 표현 역시 간이 큰 사람이 할 수 있고 필자 같은 사람들은 함부로 표현조차 겁이 난다.

 

그의 이론을 빌리면 결핍을 강하게 느끼는 인간들은 그 결핍을 해결키 위해 남을 해치고 또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 지독한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악행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평생을 비관론자로 살아가며 결혼도 하지 않고 강아지와 혼자 살다가 세상을 비관하면서 떠난 그의 일생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보면서 과연 우리 삶의 99%가 고통뿐인 이 세상을 어떻게 왜 살아야만 되는 걸까 라는 이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선 ‘시지프스 신화’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까뮈의 말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그의 신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시지프스는 세상에서 제일 꾀가 많고 약삭빠르며, 지혜롭고도 현명했던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그는 수많은 신들을 속여가며 신들 사이에서 거짓말과 이간질을 하면서 살다가 신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런 행동에 대한 벌로 그는 세모난 높은 산꼭대기에 큰 바윗돌을 올려 놓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세우면 또 굴러 떨어져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전혀 의미도 목적도 또 끝도 없는 부조리(Irrationality)한 형벌을 받는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의 삶 역시 의미도 목적도 끝도 없이 태어나서 죽고 또 다시 태어나 죽는 무의미한 삶으로 비교하며 이 세상에 내쳐진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 형벌을 계속 받고 살고 있다는 이론을 펼쳐낸 것이다.

그래도 시지프스는 포기하지 않고 돌을 계속 올리고 또 올리는 것만이 신들에게 반항할 수 있는

길이고 바로 그렇게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이고 또 의미라는 묘한 철학을 말했다. 필자에겐 그저 헛소리로만 들리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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